
1. 3년전쯤 언니랑 같이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하던 알폰스 무하전을 갔던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 다시 찾아보게됨. 마이아트뮤지엄은 도슨트 프로그램을 무료진행해줘서 더 좋았음. 다른 전시는 도슨트를 잘 놓치는데 여기는 한번 갔던던 곳이라고 부득불 맞춰갔던ㅋㅋ

2. 무하가 활동하던 시기는 가히 예술가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모네, 마네, 고흐, 고갱, 피카소 등등등 거장들의 시대를 같이 살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의 독자적으로 상업디자인의 길을 열었던 무하. 그의 생애를 보면 초년이 마냥 순탄하진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어릴 적 부터 미술-드로잉-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세때 프라하 미술 아카데미에 지원했지만 불합격 소식을 듣고 이후로 비엔나 무대미술회사에 들어가 무대 미술 견습생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튼 비엔나에서 지내던 그는 여러 문화생활과 복지를 누리며 예술적인 공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회사의 큰 고객이었던 링 극장의 화재로 실직을 하게 됨. 한 2년정도 일했다고 함. 그러다 떠돌아 다니며 초상화 작업하다가 만난 백작의 후원으로 공부를 시작했으나 30살쯔음 또 후원이 끊기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던 그. (예나 지금이나 이런거 보면 인생은 30부터인거 같긴함..) 그는 여러 작가들의 시작과 같이 출판사나 잡지사의 삽화그리는 걸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프랑스 연극인 <지스몽다>의 전시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그의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됨. 프랑스 연극의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그의 포스터 디자인을 보고 독점 계약을 진행하게 된!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3. 사라베르나르가 너무 유명해서 미국으로도 공연하러 가고 그랬다는데, 그녀의 연극포스터는 무하의 포스터를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무하의 그림은 미국에서도 굉장히 유명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그림은 유일무이한데 그 시대도 당연히 눈길을 사로 잡았겠지. 그는 그렇게 미국에서 상업포스터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사람이 정말 인생이 피려면 이렇게도 펴지는 구나 스스로 기술을 닦아나가는 것을 게으르게 하지 말 것........... 그의 그림은 소장욕구를 엄청나게 불러 일으켜서 그는 장식디자이너로 점차 영역을 넓히며 보석디자인도 연구하며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그는 뛰어난 기교와 구성력, 신비로움 표현하는데 능했고. 그가 시각적인 상징 구현하는 탁월함을 보였다. 요즘에 태어났으면 진짜 K-pop산업에서 떼돈 벌었을지도.










4. 무튼 그의 30대 중반~40대 중반까지는 상업 작가로써 유명세를 떨치며 돈을 쓸어담았으나. 그는 체코 출신의 슬라브 민족인으로서 '
내가 과연 신이 주신 재능을 제대로 쓰고 있나?' 라는 예술적 사명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왜냐 그때는 제국주의 시대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체코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 그와중에 오스트리아 정부로 부터 파리 박람회 실내장식 의뢰를 받아서 진행하게됨. 거기에 상까지 받음. 이게 맞나? 고민할만함. 한국인이고 한국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고뇌가 무엇인지 알게 될 듯. 만약 내가 일제시대에 유명한 상업작가여도 일본한테 상받으면 심란했을 거 같음. 심지어 그의 10대 유년시절에 체코에서 민족부흥운동이 일어났었기에 그 환경이 그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쳤을 거 같다. 그는 그렇게 민족주의 작가의 길을 걷게 됨.

5. 무튼 그는 그렇게 그의 역작 '슬라브 서사시'를 그리고자하는 목표를 세우고, 후원자를 찾아 미국으로 몇차례나 건너가지만 후원자는 못찾고 아내만나서 결혼하고 애도 낳게 됨. 좌절 속에 희망은 핀다...! (대체 19살 어린 애랑 결혼하고 싶나 싶긴한데^^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그는 끈기의 아이콘 결국 찰스 리처드 크레인이란 사업가를 만나서 슬라브 서사시 작업에 착수-완성까지 하게 됨.
그는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재능을 사용하고, 새로 건국하게된 '체코'라는 나라를 위해 우표화 화폐 디자인도 무상으로 함.

7. 그의 생애와 예술관 직업관 애국심과 철학을 전부다 담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어려움. 그가 실제로 어떤 성격에 어떤 성향에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고, 그의 예술 또한 일본 만화로 접한 상업적인 부분이 더 부각된것이 사실이지만.(클램프라던가 세일러문이라던가...) 알폰스 무하의 전시를 보면 항상 그의 말년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80세가 넘은 나이에 나치에게 끌려가서 심문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된 그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나는 과연 나의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살고있는가 라는 성찰이 든다. 동시에 나는 나만으로 정의 될 수 없고 내가 속한 나라와, 집단과, 가족과, 무튼 나와 연결되어 있는 내가 속해있는 곳을 대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부정해도 나는 한국인. 한국의 역사를 기억해야하는 한국인.
+ 언젠가 슬라브 서사시를 보러 체코에 가리.
+ 알폰스 무하작품은 실제로 보면 굉장히 크다. 크고 디테일함. 아마 다음에 하면 또 보러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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