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전시] 인상주의를 넘어: 사진이 미술을 바꿨듯, AI도 예술을 바꿀까?

밍MING밍 2026. 6. 24. 13:25

전시 입구에 들어가면 보이는 타이틀과 설명

 

1. 진짜 간만에 전시를 보고 왔다. 물론 문화생활을 아예 안한 건 아니었다. 4월에 대만 여행도 다녀오고 5월에 친구랑 더현대의 렘브란트~ 어쩌고 하는 전시도 다녀왔는데 뭔가 생각하고 기록을 남기려고 본 건 아니라서 도저히 포스트로 올릴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감상문도 40분째 어떻게 써야하나 화면을 째려보고만 있다.

 

2. 복잡한 기술혁명의 시대다. 작년부터 심상치않게 붐이 일어났던 ai기술혁명이 점점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전체적인 산업영역에 (압도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이후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었고, 역사의 흐름을 간략하게라도 접근해보려면 미술사를 파는게 제일 재밌다고 나는 생각한다.(내가 미디어업계 종사자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상주의는 사진이라는 기술혁명 이후, 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기에 아주 시기적절한 기획전시라고 생각했다.

 

챕터1. 사실주의 구스타프 쿠르베

 

3. 인상주의를 설명하려면 사실주의로 시작해야한다. 사실주의랑 정말 새로운 주제의 등장이라고 볼수있다. 르네상스 이후 신화를 그리느냐 인간중심적이 주제를 그리느냐를 엎치락 뒤치락했지만, 변하지 않았던 방식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구현'이라고 볼수있다. 털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질감, 극적인 빛과 그림자 표현, 피사체에 한없이 집중하게 하고 아름답게만 그리는 교육이 반복되었으나,

'사실주의'란 보이는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자는 시도이자, 예술의 주인공을 신화와 영웅에서 평범한 사람들로 끌어내린 혁명이었다.

(‘완벽한 이상이란 존재할까? < 사실주의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 아주 옛날에 구스타프 쿠르베 전시를 간적이 있었는데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그려서 변태성욕자 아냐?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매끈하게 제모되고 완벽하게 꾸며진 아이돌들을 보니 왜 쿠르베가 그 시대에 새로운 미술 사조의 중심이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잔뜩 꾸며진 방송이 아니라 날것의 브이로그와 Y2K감성적인게 아닐까? 하는 생각.

 

 

 

4. 사실주의는 사실 오래 가지 않는다. 카메라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때문에 미술가들은 내가 목격한 것의 '인상'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내가 느낀 것, 내가 본 것, 나의 감상. 아마 그것의 시작은 에두아르 마네로부터 시작된 거 같다. 최근에 공교롭게도 <관계의 미술사>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의 시작이 마네와 드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서 초반 인상주의 부분은 재미나게 관람했다. 마네는 유년시절부터 부모님의 바람이나 말을 잘 듣는 착한어린이는 아니었다. 그의 유년을 보면.. 가라는 대학도 안가고 하라는 공부도 안하고.. 미술하겠다고 어설프게 들쑤시는 쾌남이미지에 가까움..(심지어 수잔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는 약간의 충동성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인상주의 표현, 직접가서 보면 붓질의 방법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5. 분명 인상주의자들은 '내가 느낀 인상을 화폭에 담겠어!'라는 시도보다는 '이렇게 그리면 왜 안 돼??'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겠지만(때문에 마네는 활동을 하는 내내 지탄과 비난을 끊임없이 들었고 그거때문에 고통속에서 살다가 갔다) 마치 모든 사조의 시작이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안으로 발전한 것처럼 설명이 된 거 보면 후대의 해석은 어쩔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 같음. 암튼, 마네의 (추측컨데) ENTP적인 성향으로 물꼬를 튼 인상주의는 동시대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후로는 '내가 느낀 인상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인 고민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왼쪽 르누아르(자신의 아들, 후에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이 됨) 오른쪽 드가의 그림(몇 안되는 드가의 연민과 공감이 들어간 그림이라고 생각함니다)

 

각자의 성격이 보이는 발언들.. 마네와 드가의 혐관 아닌 혐관^^;

 

6. 초기 인상주의는 마네, 르누아르, 드가로 설명이 되는데, 마네가 도발적인 주제로 살롱을 흔들고, 르누아르가 따뜻한 인상을 남겼으며

드가가 객관적인 일상을 표현한 식으로 개성이 뚜렸했기 때문인거 같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마네가 인상주의의 가능성을 열고 르누아르가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표현을 하는 방식, 드가가 객관분석적인 방식으로 나뉘게 된게 아닐까 싶다. 당연하게도 당시에는 르누아르 그림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어느시대에나 따뜻한 시선에 대한 호의는 통하는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법.

 

 

나비파와 상징주의, 첫번째 그림은 알폰스 무하가 생각났음

 

7. 초기 인상주의를 넘어가면 후기인상주의 전에 상징주의와 나비파가 등장한다. (전시상에는 잠시 일본의 판화가 설명되지만 패스하겠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외부세계의 관찰한 자료가 넘쳐나면, 인간이란 자연스럽게 내면세계의 관찰로 들어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는 화려하고 장식적이지만 어딘가 이해하기 어렵고 공허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 어딘가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감 때문일까? 아니면 시대적으로 불안한 시대였어서 무의식중에 반영된걸까? 개인적으로는 <무릎 위 옷을 든 여인>(밑에서 두번째)그림이 '전통적인 누드화에서 흔히 강조되는 관능미를 배제하고, 일시적인 정서적 고립의 감각을 강조'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음. 당시 작가는 이 그림이 판매되지 않을 거라생각해서 형에게 보냈지만, 후에 재조명 되었다는 것까지 완벽한 서사의 그림이라고 생각함.

 

 

후기인상주의 그림 아래는

 

8. 나비파를 넘어가면 후기 인상주의가 나온다, 후기인상주의는 우리가 잘아는 폴세잔과 고흐가 나옴. 난 사실 세잔의 정물화를 좋아하는데.. 아니 정확하게는 정물화를 좋아하는데, 특별히 해석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도를 이해해야할 필요없이 그냥 사과. 그냥 꽃. 이라는 단순함이 좋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그림보다는 유명하지 않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냥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인상주의 기법(인상을 표현해보려는 여러 붓질의 시도)과 개인 내면의 표현이 일치되는 그런 사조적 흐름때문에 선택된 그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기 인상주의의 가장 큰 의미는 내 마음에 따라, 정서에 따라, 감정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이 달리 보인다는 거 아니겠는가.

 

야수주의의 대표 앙리 마티스

 

9. 인상주의 다음에는 색채를 해방한 야수주의가 시작된다. 사실 이때 부터 나의 정신은 흐려지기 시작함... 전시장이 1층과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각 층당 보는데 1시간씩 걸리다 보니.. 너무 힘들어따.. 그리고 야수주의부터는 나의 기본적인 지식이 떨어져서 반쯤 '???'<하는 느낌으로 대충 눈으로 훑었음. 마티스도 오랜시간 무명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이름을 알리게 된 케이스인데, 굉장히 점잖고 자제력이 뛰어난 신사적인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때문에 그의 예술철학은 "그림은 안락의자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라는 것이었다. 주제 선정이나 밝고 선명한 색감 활용을 하는 거 보면 그의 성정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음(그런 그에게 색감이 강렬해서 야수가 어쩌고 저쩌고라고 평론했다니, 어느시대나 새로운 것에 대한 반감은 존재하는 것 같다)

 

10. 이후로 표현주의, 입체주의가 왓다갔다하는데, 기술적 기교적 방식적인 고민과 죽음과 낙원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과 표현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느낌이었다. 세계대전이후의 미술계여서 그런가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겁고, 암울하고, 보는 내내 메멘토 모리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여실히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언젠가는 표현주의 이후의 미술도 좀더 고민하고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치만 근대역사가 세계대전과 나치, 제국주의로 첨철되어 고통뿐인 역사라 접근해서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다. 경쟁에서의 우위선점과 이득을 취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과 피를 당연히 하게 되는 시기였다고 생각하면 위기에 닿은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무섭게 다가오며 또.. 남일 같지 않다. 역사적으로 우린 공포와 잔인함을 경계하며 또 학습하게 된 거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얼마 전에 계엄이 있지 않았는가)

 

11. 막판에 정신이 흐려져서 찬찬히 제대로 못보고 온게 좀 아쉽다. 그래도 새로운 기술의 발전아래 인간은 여전히 인간을 탐구하고, 고민하고, 연구하며 앞으로 천천히 확실하게 나아가지 않을까? 결국 방법적인 것 말고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죽음, 낙원, 행복, 고통, 같은 것들 말이다.